서울 인조별서 유기비는 서울특별시 은평구에 있는 조선시대 유기비이다.
유기비가 있는 자리는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定遠君, 원종으로 추존)이 소유했던 터전이다. 광해군이 임해군(臨海君, 1574∼1609)과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을 죽이고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등 혼란이 극에 달해 있었을 때 인조는 정치를 바로잡고자 서인 일파인 김류(金瑬, 1571∼1648), 이귀(李貴, 1557∼1633), 김자점(金自點, 1588∼1651), 이괄(李适, 1587∼1624) 등과 이곳에서 반정을 계획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장단부사 이서(李曙, 1580∼ 1637), 이천의 이중로(李重老, 1577∼1624), 홍제원(弘濟院)에서 김류의 군사와 합세하여 창의문(彰義門)을 통해 창덕궁으로 들어가 광해군을 축출함으로써 반정을 성공시켰다. 성공 사실을 기념하며 반정의 과정과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유기비는 조선왕조 제16대 임금 인조(仁祖, 1623~1649)가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르기 전에 머물렀던 별서(別墅)를 기념하고자 1695년(숙종 21)에 조성한 것으로 인조반정에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그 현장을 증명해 주는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표제는 조선 19대 숙종(肅宗)의 어필(御筆)로 「仁祖大王龍潛之時別墅遺基碑(인조대왕용잠지시별서유기비)」라고 쓰고, 뒷면 음기 (陰記)는 숙종의 어제(御製)를 동평군(東平君) 이항(李杭)이 쓰고 있어 가치를 더해준다. 석비의 조형적 측면에서도 귀부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등장한 조선시대 초기양식의 전통을 잇고 있는 동시에 이수는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간결한 한옥 양식으로 변화된 후기 석비 양식의 특징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비는 조선시대 석비예술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