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봉암사 극락전은 경상북도 문경시 봉암사에 있는 조선시대 사찰건물이다.
봉암사(鳳巖寺)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파의 종찰로서 현재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일관해 온 선찰(禪刹)이다. 봉암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지증대사탑비의 비문을 통해 881년(신라 헌강왕 7)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외에도 문경읍지, 가람지 등의 기록이 지증대사에 의한 봉암사 창건설을 뒷받침한다. 봉암사는 해방 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 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 도량으로 거듭난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 등 4인이 결사도량으로 봉암사를 찾게 되며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에서 중단되었다가 1970년대 초부터 다시 수좌들이 모여들어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극락전은 1982년부터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립선원으로 지정되며,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경내에 위치한 극락전의 가치에 대해서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극락전의 건립에 기록된 것이 없으며, 1726년(영조 2)에 중창 시 기록된 상량문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기단과 초석은 고려시대 것으로 볼 수 있다. 건물 양식과 내부에 남아있는 단청 등으로 미루어 득통(得通)대사 가 1431년(세종 13)에 봉암사를 중수할 당시에 중건된 것으로 확인된다. 「봉암사사적기」는 1674년(숙종 1), 1703년(숙종 29), 1907년의 화재에도 극락전은 피해를 면했다는 기록이 있다. 1783년(정조7) 사적기는 ‘봉암사에는 중층, 혹은 삼층의 건물들이 있는데, 이 중에 극락전이 있다’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는 지붕부 보수가 있었는데 망와에 ‘소화16년(1941년)’이란 기록이 남아있다.
봉암사 극락전은 4면이 1칸인 다포계의 홑처마 사모지붕 건물이다. 공포 하부에 주심포양식의 처마를 덧달아 낸 중층목탑형식이다. 하부 처마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정방형의 평면이다. 기단은 지대석, 면석, 갑석으로 구성된 가구식 기단으로 창건 당시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구식 기단과는 구성에 차이가 있고 탱주를 생략하여 간략화하였다. 외진주는 초석 없이 갑석 위에 두었고 내진 고주는 가공된 원형의 초석을 놓아 배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올렸다. 공포는 내‧외 2출목 다포형식으로 주간포는 4면의 면마다 2구씩 배치하였다. 살미첨차는 외부가 앙서형이고, 내부는 끝부분이 둥글게 깎인 교두형이다. 사모지붕의 가운데에는 상륜을 두어서 탑의 요소를 두루 갖추게 하였다. 창호는 정면에는 문설주를 2개 세우고 중앙은 쌍여닫이 세살청판문으로하고 양옆은 하부에 머름을 둔 외여닫이 세살창을 달았다. 건물의 좌‧우측면은 중앙에 외여닫이 세살문을 달고 양옆은 심벽으로 했다. 외부는 판벽을 붙였다. 배면은 전체 심 벽으로 하였는데 외부에는 판벽을 붙였다. 천정은 우물천장, 중앙은 층급을 두어 보개천장을 만들었다. 단청은 금단청으로 외부는 근래에 개채된 것이다.
극락전에는 ‘極樂殿(극락전)’이라는 현판이 중앙에 걸려 있는데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의 전각’을 가리킨다. 내부단청은 극락전 중건 시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세밀한 문양과 채색이 매우 잘 남아 있다. 양식과 채색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봉정사 극락전이나 수덕사 대웅전의 것과 비교할 만하다.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좋고, 반자 등에 보이는 고분살붙임의 기법은 그 유구가 매우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