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테이블 캡션
지정종목 보물
소재지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7
지정(등록일) 2022.07.29
수량/면적 1동(64㎡)
지정면적
보호구역
통합 분류 유적건조물 /교육문화 /교육기관 /서원
건립연대/시대 조선시대(16세기)
소유자(소유단체) 옥산서원
관리자(관리단체)

국가유산 설명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는 『옥산서원기(玉山書院記)』(1574)에서 1572년에 서원 초창 당시부터 누각으로 건립되었으며, 납청루(納淸樓)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노수신이 제액을 찬하면서 무변루(無邊樓)로 명칭을 고쳐 지었다. 무변루에 설치된 기와 중에서 1674년(숭정 38), 1782년(건륭 47), 1839년(도광 기해) 명문이 확인되고 있으므로 이때에도 중수하였을 것이고, 이후 1844년에도 중수가 확인된다. 이 외에도 『어제제문(御製祭文)』(1792), 『을사년 옥산서원 통문(乙巳年 玉山書院 通文)』(1905)에 따르면, 토론과 휴식, 모임, 숙식의 공간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타나며, 다양한 시문에서 무변루 기록이 확인된다. 고종 때 훼철되지 않은 사액서원의 문루로 역사적 기록과 함께 잘 보존되어 현재까지 잘 이어지고 있다.

무변루 배치는 서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규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로 건립되었다. 구조는 5량가이고, 공포는 초익공 양식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에다 좌·우 측면에는 홑처마 부섭지붕을 설치하였다. 지붕에 얹은 기와 중 숭정(崇禎)과 건륭(乾隆), 도광(道光)이란 명문이 남아있어 과거 수리 시기를 정확하게 알게 해 준다.

주요 특징을 요약하면, 1572년 초창 이래로 옥산서원 무변루는 위치 변동이 없이 그 자리에 지속되어 왔다는 점과 초창 시 경상도 유림이 힘을 모아 건립하고 그 이후에도 중건 중수를 지속하여 왔다는 점, 유생들의 교육기관으로서뿐만 아니라 문화창달과 지식보급에 큰 역할을 하여 왔다는 점, 무변루의 중수 연대를 명확히 알게 해주는 3종류의 명문기와가 존재한다는 점, 비 훼철 사액서원 중 삼문과 방, 대청, 누마루, 고상식 아궁이를 두고 있는 아주 드문 문루라는 점, 상층에 고상식 온돌방을 설치하여 기숙을 겸하는 점, 양 측면에 부섭지붕을 달아낸 누마루를 설치하여 주변의 자연경관 조망을 무변루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두드러진 특징으로 인해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는 비 훼철 사액서원의 초기 문루로서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므로 국가지정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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