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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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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확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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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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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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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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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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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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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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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좌

  • 보물

  • 지정(등록일)

    1963.01.21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 지정종목

    보물

  • 수량/면적

    1구

  • 지정면적

    5.9

  • 보호구역

    1,029

  • 건립연대/시대

    고려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부여군

  • 통합 분류

    유물 /불교조각 /석조 /불상

국가유산 설명

충청남도 부여의 정림사지에 남아 있는 석조불상으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와 남북으로 마주보고 있다. 정림사는 6세기 중엽에 처음 창건되어 백제 멸망 때까지 번창하였던 사찰로 고려시대에 다시 번창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석불상은 고려 때의 번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의 머리와 보관은 제작 당시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시 만들어 얹은 것으로 보인다. 신체는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겨우 남아 있어 세부적인 양식과 수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어깨가 밋밋하게 내려와 왜소한 몸집을 보여준다. 좁아진 어깨와 가슴으로 올라간 왼손의 표현으로 보아 왼손 검지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쥔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이루어진 8각으로 불상보다 공들여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상대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이며, 중대의 8각 받침돌은 각 면에 큼직한 눈모양을 새겼다. 하대에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과 안상을 3중으로 중첩되게 표현했다.
현재 불상이 자리잡고 있는 위치가 백제시대 정림사지의 강당 자리로 이곳에서 발견된 명문기와를 통해 이 작품은 고려시대에 절을 고쳐 지을때 세운 본존불로 추정된다.

연혁

연혁: 구분, 내용, 첨부파일에 대한 표입니다.
구분 내용 비고
고려시대 제작
1963 보물로 지정
1972 실측, 보호책 및 안내판 설치
2008 지정구역 정정 및 지형도면 고시
2010 명칭 변경(부여정림사지석불좌상 →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2017 정밀실측조사
2023 정기조사(대좌의 멸실과 균열이 심하며, 보수물질이 일부 탈락되어 주의관찰 필요)

사업 이력 5건

사업 이력: 사업유형, 사업명, 연도, 구분, 부서, 상세보기에 대한 표입니다.
사업유형 사업명 연도 사업주체 사업수행 상세보기
기록보존 2017 부여군청
DB 구축 2021 문화재청 정보화담당관 엔디에스컨소시엄
DB 구축 2022 문화재청 정보화담당관 엔디에스컨소시엄
DB 구축 2023 문화재청 디지털문화유산팀 엔디에스컨소시엄
DB 구축 2024 문화재청 디지털문화유산팀 엔디에스컨소시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