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30대 문무왕(재위 661∼681)의 무덤이다.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 무열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또한 병부, 창부 등 중앙관청을 창설하였고, 지방통치를 위한 5소경제도와 9서당 10정의 군사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국가 체제 완성의 기초를 제공하였다.
대왕암은 자연 바위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그 안은 동서남북으로 인공수로를 만들었다. 바닷물은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으로 나가게 만들어 항상 잔잔하게 하였다. 수면 아래에는 길이 3.7m, 폭 2.06m의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한 거북모양의 돌이 덮혀 있는데 이 안에 문무왕의 유골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왕이 죽으면서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근처에 감은사를 세워 법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문무대왕릉 → 경주 문무대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대왕암은 해수면 위로 동서 35m, 남북 36m, 높이 5.3m정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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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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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등록일)
1967.07.24
경주 문무대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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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앞 해중(대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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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종목
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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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12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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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면적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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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구역
36,3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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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연대/시대
신라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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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자(소유단체)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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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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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분류
유적건조물 /무덤 /왕실무덤 /고대
국가유산 설명
연혁
| 구분 | 내용 | 비고 |
|---|---|---|
| 681 (신라 신문왕 원년) | 신라 30대 문무왕의 무덤으로 동해안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 | |
| 1967 | 사적 제158호로 지정 | |
| 1973 | 정화사업 | |
| 2011 | 문화재명 변경(문무대왕릉→경주 문무대왕릉) | |
| 2019 | 토지매입 및 경역정비 | |
| 2020 | 토지매입 및 경역정비 |
사업 이력 7건
| 사업유형 | 사업명 | 연도 | 사업주체 | 사업수행 | 상세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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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1975년 문화재대관 사적편(상) | 1975 | 문화재관리국 | 문화재관리국 | |
| 조사연구 | 2009년 사적정기조사 | 2009 | 문화재청 사적과과 | 사단법인 호연건축문화유산연구원 | |
| 조사연구 | 2017년 사적정기조사 | 2017 | 문화재청 보존정책과 | 사단법인 우리문화유산연구원 | |
| DB 구축 | 2021년 문화유산 원형기록 통합DB 구축 | 2021 | 문화재청 정보화담당관 | 엔디에스컨소시엄 | |
| DB 구축 | 2022년 문화유산 원형기록 통합DB 구축 | 2022 | 문화재청 정보화담당관 | 엔디에스컨소시엄 | |
| DB 구축 | 2023년 국가유산 원형기록 통합DB 구축 사업 | 2023 | 문화재청 디지털문화유산팀 | 엔디에스컨소시엄 | |
| DB 구축 | 2024년 국가유산 원형기록 통합DB 구축 사업 | 2024 | 문화재청 디지털문화유산팀 | 엔디에스컨소시엄 |